뉴욕 한식당에서 다른 사람들이 비빔밥 먹는 것을 옆자리 직관할 때마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젓가락으로 비빔밥을 먹는다. 예의범절을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먹는 게 한국 기본 밥상머리 예절이라지만 이게 예절이었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요즘 사람들은 젓가락으로 밥을 먹지 않나. 수저 바꾸기 귀찮기도 하고, 밥풀 붙은 숟가락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좀 곤란하고 그러니까. 역지사지로 한국식 수저 외에 다룰 줄 아는 식기가 없는 내가 나이프나 손을 사용해야 하는 음식을 먹을 때 얼마나 속이 터지게 먹을까 생각해 보면 밥 좀 젓가락으로 먹는 게 뭐 큰 일인가 싶지만… 비빔밥은 얘기가 좀 다르다. 기껏 열심히 비벼놨는데 아삭한 무생채랑 고소한 시금치가 같이 씹히게 숟가락에 쌓아서 먹어야 맛있을 텐데! 열심히 비벼놓고 밥 몇 알과 콩나물 한 줄기를 젓가락으로 드는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먹지 말고. 이렇게 잡숴봐. 한 번만…’ 하고 불쑥 조금 오지랖을 떨고 싶어진다. 혹시 숟가락을 사용해서 밥을 먹는 게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싶어서 과장되게 숟가락을 사용해 보기도 하지만 내 생각처럼 되는 경우가 없었다.
이렇게... 숟가락으로 싹싹 잡숴봐바 한 번만...
왜 젓가락을 사용하는지 조심스레 물어본 적도 있는데 이게 굳이 무슨 생각을 하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답을 받았다. 액상 형태가 아닌 음식은 포크로 먹는 미국식 식습관과 동아시아 음식은 어찌되었든 젓가락으로 먹어야 한다는 학습이 적절하게 짬뽕된 결과인 걸까. 후자에 생각이 닿자, 젓가락을 열심히 사용하는 국가 중 한국인만큼 숟가락을 열심히 사용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밥그릇을 들고 먹는 것이 예의이기 때문에 밥을 숟가락으로 먹을 필요가 없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된 이유가 뭔가 더 있지 않을까.
외국에 나간 한국인들은 다 궁금한 게 비슷한 건 지 250년 전 청나라를 방문한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이 질문이 수록되어 있다. 1780년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 황제였던 건륭제의 생일을 축하하러 열하강까지 가게 되고 이 여정 중 생각한 바를 적어 열하일기를 펴낸다. 청나라 학자들과 함께하는 밥상에서 작은 국자 같은 숟가락으로 (아마 지금의 우리가 우동 숟가락이라고 부르는 중국식 숟가락이었을 것이다.) 밥이 잘 안떠지자, 박지원은
“빨리 월왕(越王)을 불러 오셔요.”
라고 하여 같이 밥을 먹던 중국 학자들이 뭔 말이여 하고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에 박지원은
“월왕의 생김새가 목이 썩 길고 입부리가 까마귀처럼 길었답니다.”
하고 맞장구를 쳐 주변의 사람들을 “팔을 잡고 웃느라 입에 들었던 밥이 튀어나오며 재채기를 수없이” 하게했다고 한다.
사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대화가 필담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아무리 한자를 막힘없이 사용했다지만 글로 다른 사람을 밥알이 튀어나올 때까지 웃기다니. 당대의 베스트셀러 작가의 센스는 역시 보통이 아닌가 보다. 이후 박지원은 밥을 도대체 숟가락 없이 어떻게 먹냐고, 손으로 뭉쳐서 먹냐고 집요하게 물어보지만, 청나라 사람들은 그런 박지원의 반응에 깔깔대느라 바쁘다. 중국식 숟가락은 각이 깊어서 밥 먹기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던 내 모습이 중화권 친구들에게 이랬을까.
1700년대의 청나라 사람들은 시치미를 떼었지만 12세기까지만 해도 중국에서의 주식은 기장과 이를 이용해서 만든 죽이었다. 숟가락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음식인지라 이때까지는 중국에서도 숟가락과 젓가락 둘 다 자주 사용되었다. 12세기 이후 중국의 음식 문화는 젓가락을 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변하게 되는데, 그 중 주식의 변화가 주된 이유로 꼽힌다. 양쯔강 북쪽에서 겨울 밀 재배를 시작하면서 국수나 만두 (맛있는 거 먹었네…) 등 밀을 중심으로 한 음식으로 먹는 경우가 많아졌고, 점차 곡물이나 액체를 뜨는 데에 장점이 있는 숟가락을 점점 더 덜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나라 이후 입식 생활이 도입되면서 훠궈 같은 음식을 상에 올려놓고 나누어 먹는 문화가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런 음식을 나누어 먹는 방식의 변화도 침이 닿는 부분이 적은 젓가락의 사용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입식 생활은 조선 말기까지 개인의 소반에 좌식으로 식사하던 한반도의 식생활과 대비된다.
한국, 일본, 베트남, 몽골 등 중국의 많은 주변 국가가 젓가락을 받아들였다. 이 중 베트남은 찰기가 없는 쌀을 주로 먹는 동남아시아 국가라는 점이 눈에 띄는데, 실제로 베트남을 제외한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는 손을 사용해서 밥을 먹었다. 하지만 베트남은 10세기까지 중국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으며 중국 문화의 큰 영향을 받았고, 이에 따라 베트남에서는 동남아시아에서 예외적으로 젓가락을 사용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반면 젓가락은 일본에도 주요 식기로 자리 잡게 되는데, 군락지나 유적지에서 숟가락이 발견되지 않은 것을 미루어보았을 때, 중국이나 한반도와 달리 숟가락을 보편적으로 사용한 역사가 없이 바로 젓가락을 주요 식기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찰기가 있는 쌀을 일찍 재배한 점이나 가벼운 목기를 식기로 사용한 점 등이 숟가락이 필요하지 않았던 이유로 꼽히기도 한다. 전혀 다른 쌀을 주식으로 삼았던 베트남에서도 젓가락을 주로 사용한 점을 생각해 보면, 젓가락을 대신할 만한 식기 문화가 이전에 있었는지 역시 각 나라의 젓가락 사용에 큰 영향을 미친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한반도에는 밀을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 별로 없었다. 송나라의 사신이 12세기 고려를 방문하고 쓴 「고려도경」에는 ‘밀이 적어 화북 지방에서 수입하고 밀가루 값이 매우 비싸 잔치 때 먹는다’라고 적혀있다. 현대 한국인이 빵과 면에 미쳐있는 것은 이때 한을 풀고 싶기 때문일까. 쌀과 보리, 기장 등이 여전히 주식이었던 한국에서는 숟가락이 필요한 밥과 국, 반찬이 중심인 식생활이 계속되었다. 더불어 주변 국가에서는 목기 식재를 흔히 쓴 반면에, 한반도에서는 구리가 비교적 풍족하던 고려시대에는 놋그릇을, 한반도에 구리가 바닥난 이후로는 자기가 그릇으로 쓰였다. 두 재질 다 뜨거운 밥과 국에 쉽게 온도가 올라가는 재료이다. 거기에 주변 나라 사람들이 기겁할 정도로 조선인들은 밥을 많이 먹은 걸로 유명하여 밥그릇 크기도 상당히 컸다1. 여러모로 한반도의 밥그릇이 보통 인간들이 들고 먹을 만큼 만만한 식기는 아니었으며, 숟가락이 필요한 식문화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조선은 유교 국가였다는 점에서 숟가락 사용의 기원을 찾는 관점도 있다. 12세기 전 중국에서 쓰인, 숟가락과 젓가락을 같이 사용하던 시대의 유교 경전인 주례를 일상 예의범절의 기반으로 보았기 때문에 숟가락 문화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진실은 이 모든 것이 적절한 습도와 바람과 타이밍에 버무려진 어디쯤 있는 거겠지만, 가끔 먹방을 보면서 이 작은 나라에 도대체 잘 먹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늘 신비함을 느끼는 나로서는 큰 밥그릇은 숟가락을 부른다는 썰에 더 마음이 간다.
가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재미로 밸런스 게임 비슷한 질문을 주고받는다. “더 바랄 것 없는 집에서 공짜로 살 수 있지만 50층에 있고 승강기를 사용할 수 없다, 거기에 살 것인가”, “오른손가락 끝에서 마치 음료 디스펜서처럼 마실 것이 나오는데 오직 그 다섯 가지 음료만 평생 마실 수 있다, 무슨 음료를 선택할 것인가” 같은 뭔가 시시하지만 공들인 질문들. 이런 질문들을 너스레로 주고받는 와중에, 만약 죽는 날까지 단 하나의 식기만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을 고를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큰 생각 없이 숟가락이라고 대답했는데 당시 주변 친구들의 이해를 받지 못했다. 숟가락을 쓸 일이 있다면 들고 마시면 되잖아? 라는 반박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밥을 조금 떠서 국물에 적셔 먹는 일, 삶은 계란을 부숴서 떡볶이 국물에 적시는 일, 비빔밥의 재료를 모아 한 술에 꾹꾹 눌러 담는 맛을 평생 모르는 척 살아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아쉽다. 그렇게 오늘도 수프를 떠먹는 용도로 움푹 패어있는 서양식 숟가락에 밥과 김치를 얹어본다.
참고자료
- 김주희. (2020, 5월). 밀과 보리, 더 친숙하고 더 맛있게. 그린매거진, 177. 농촌진흥청. https://www.rda.go.kr/webzine/2020/05/sub1-2.html
- 박지원. (1780). 혹정필담(鵠汀筆談). 『열하일기』 (이가원 역). 한국고전번역원.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1370A_0120_000_0010
- 입짧은햇님. (2025, 8월 18). 생일 기념 최애 편의점 음식 잔치~!! 비빔밥 10개와 신상 라면! 250818/Mukbang, eating show.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EjHGx95lOKc
- 주영하. (2018).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식사 방식으로 본 한국 음식문화사. 휴머니스트.
- 권수연, 박영미, 최재영. (2017, 1월 23일). [스브스스토리] 푸드파이터의 나라 조선. 스브스스토리. https://blog.naver.com/subusunews/220918016350
- KBS. (2021, 12월 7일). 중국·일본과 달랐던 한국 숟가락 문화 [동영상].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poe8wwcX4nI
- Wang, Q. E. (2015). Chopsticks: A Cultural and Culinary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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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먹짱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그 중 몇 개만 뽑아보자면 “65세가 된 어떤 조선인은 식욕이 없다면서도 밥 5사발을 비웠다.” (마리 다블뤼, 프랑스 신부), “조선 사람이 밥 먹을 때 말하지 않는 것은 음식을 더 많이 먹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윌리엄 그린피스, 미국 동양학자),“서너명이 앉으면 복숭아 참외 20~25개가 없어지는 게 다반사다.” (이사벨라 비숍, 여행가) (스브스스토리, 2017)- 이 때의 과일은 씨알이 작았을텐데 넷이서 스무개는 먹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내가 바로 한국인인걸까. 성호이익은 이렇게 많이 먹는 습관 때문에 조선이 가난에서 벗어나질 못한다고 작작 좀 먹으라는 구절을 성호사설 중 식소 편에 쓰기도 했다. ↩